대전시 중구 뿌리공원로 79에 위치한 ‘성씨(姓氏)별 뿌리공원’은 민과 관이 유기적인 협조체제로 조성된 전국 유일의 “효” 테마공원으로써 자신의 뿌리를 되찾을 수 있는 성시별 조형물과 사신도 및 12지지를 형성화한 부리 깊은 샘물, 각종행사를 할 수 있는 수변무대, 잔디광장과 공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팔각정자 뿐만 아니라 산림욕장, 자연관찰원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추어진 체험학습의 산 교육장이다.
양씨
작품명 : 애족(愛族)의 길, 조각가 : 회일
작품설명 : 좌대는 제주도, 좌대위의 산 모양은 한라산, 세 개의 봉우리는 삼성혈, 원석은 백록담, 상단에 성화를 두 손으로 받든것은 양문을 상징한 것으로써 제주도 한라산 정기를 받아 탐라국을 개국한 양을나 시조의 후손은 백록담처럼 영원하며 성화같이 온 누리를 밝혀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며 번창함을 기원함에 뜻에 있다.
유래 ▸ 양씨(梁氏) 시조(始祖)는 제주도 삼성혈(三姓穴)에서 나와 탐라국을 개국(開國)한 양을나(良乙那) 이다.
중시조(中始祖) 탐라국주 양탕(梁宕)이 신라 내물왕 때 입조하여 선린외교를 하였고, 그 때부터 양(良)성(性)을 양(梁) 성(性)으로 쓰게 되었다.
제주양씨(濟州梁氏)는 한라군 순(洵)이 신라 신문왕때 한림학사에 봉해졌고, 고려 태조 때 성주왕자를 봉작 받은 구미(具美)가 성주공파(星主公派), 고려 명종 때 유격장군이 된 보숭(保崇)이 유격공파(遊擊公派), 각각 기세조(起世祖)이다.
남원양씨(南原梁氏)는 우량(友諒)이 신라 경덕왕 때 남원부백에 봉해졌고, 고려 성종 때 병부랑중 동궁내 시강학사에 오른 능양(能讓)이 병부공파(兵部公派), 고려 원종 때 찬화공신 용성부원군에 책봉(策封)된 주운(朱雲)이 용성군파(龍城君派), 고려 충선왕 때 대방부원군에 봉해진 수정(水精)이 대방군파(帶方君派), 각각 기세조(起世祖)가 된다 충주양씨(忠州梁氏)는 고려 태조 때 삼한통합대장군이 되고 예성부원군으로 훈봉받은 능길(能吉)이 예성군파(蘂城君派) 기세조(起世祖)이다.
이처럼 제주, 남원, 충주로 본관이 나누어졌으나 근원은 한 뿌리에서 내려온 혈족이다.
고려시대 성주공 호(浩), 조선시대 증 영의정 여공(汝恭), 대제학 문양공 성지(誠之), 청백리 일로당 관(灌), 대사간공 사귀(思貴), 학포 공팽손(彭孫), 소쇄처사 산보(山甫), 임진왜란 때 충장공 대박(大樸)장군, 병인양요 때 충장공 헌수(憲洙)장군,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전백(甸伯), 한묵(漢黙), 임시정부 때 독립운동가 기탁(起鐸), 세봉(世奉), 기하(基瑕), 문학박사 주동(柱東), 민주통일당총재 일동(一東)이 양씨문중(梁氏門中)을 빛낸 훌륭한 선조이다.
안동 김씨
작품명 : 웅비-비상, 조각가 : 천종권
작품설명
유래 ▸ 우리 안동김씨는 鷄林大輔 金閼智公의 먼 자손이다. 味鄒王에 이르러 신라왕족이 되고, 朴. 昔. 金 오십육 왕 중 삼십칠 왕의 王統을 이은 敬順王의 후손이다,
敬順王의 아드님은 大安君 殷說이요 그 아드님 平章事叔承公이 비로소 안동에 봉군되고 관향을 삼았으니 우리의 시조이시다.
후손 兵部尙書 孝印公은 문장과 글씨로 뛰어나 王命으로 쓴 글씨가 여러 곳에 남아있다.
아드님 金方慶은 고려 조정이 안팎으로 시련을 겪을 때 高宗, 元宗, 忠烈王 세임금을 섬기면서 재상으로 도원수로 외교관으로 나라를 지켜온 위인이며 上洛郡開國公에 봉해졌다. 死後 崇義殿에 배향되고 역사 이래 처음으로 君臣間의 같은 시호인 忠烈이 내려졌으니 곧 우리의 중시조 이시다.
현손 이십 宗班은 모두 학덕이 높아 혹은 정승 혹은 문장가로 일시의 명류를 이루었고 지금의 파조 이시다.
조선조 개국 이래에도 名公臣卿과 忠臣烈士와 節義志士가 잇달아 배출되어 나라가 평화로울 때는 문화발전에 기여하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살신성인으로 목숨을 초개처럼 버려 나라를 지켰다.
상해임시정부 주석 白凡 金九 선생은 충렬공 후손으로 나라위해 평생을 몸바친 애국지사요 정치지도자로 겨레의 스승이 되었다.
한편, 우리나라성씨 286성. 4,179본관(2000년 통계청 자료) 본관(本貫)이 있으며,[관향(貫鄕)] 시조(始祖), 중시조(中始祖)의 출신지와 혈족의 세거지(世居地)로 동족(同族)의 여부를 가리는데 중요하며, 씨족의 고향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씨(姓氏)의 종류(種類)가 적어서 같은 혈족의 집안(가족)의 수가 많아지게 되어 성씨(姓氏)만으로는 동족(同族)을 구분하기가 곤란하므로 본관 (本貫)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자료 : 대전 뿌리공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