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
    김진홍 목사
나는 고등학생 시절에 모범생이지를 못했다. 2학년에 올라갈 즈음에 공부가 하기 싫고 세상살이도 시들하게 여겨져서, 학교를 그만두고 세상구경이나 하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칫솔하나 주머니에 꼽고 손에는 헬만 헷세 시집 한 권을 들고는 무전여행을 떠났다. 무작정 부산 가는 열차를 타고서는 삼랑진에서 내려 낙동강 강변 둑길을 걸으며 마산까지 걸어갔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무전여행은 일 년 반이나 지속되다가, 어느 날 이젠 집으로 들어가 공부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귀환하였다. 집으로 오니 동급생들은 이미 대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다시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이상 목숨 걸고 공부해 보자는 결심을 하고는, 이발관으로 가서 율 브린너 스타일로 백코를 치고는 들어 앉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먼저 읽기 시작한 책이 서울대학 교수였던 유진 교수가 쓴 영어구문론 English Syntax란 책이었다. 그 책을 무조건 7번 정독하였다. 그러고 나니 그 책에 적힌 내용은 훤히 알게 되었다. 동명사는 몇 페이지, 전치사는 몇 장하는 식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집중하기 시작하여 13개월을 공부하였더니 요즘의 수능고사에 해당하는 학력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지방 대학에서 4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에 교실에서 공부만 하지 않고 무전여행을 하며 남 다른 경험을 쌓았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대학은 2년이 늦어졌지만 인생살이 자체는 내 또래보다 앞 설 수 있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신학교에 들어가서도 3년 수업기간을 나는 5년간 다녔다. 청계천 빈민촌에서 마을 청년들을 모아 넝마주이를 하며 공동체를 이루어 사느라 졸업이 2년이나 늦어졌다.

그러나 이 역시 나에게는 큰 자산이 되었다. 목회자로써 자칫하면 고정관념이나 틀에 메이기 쉬운데, 나는 그런 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개척정신에서 남보다 앞 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교회와 사회에는 모범생들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고정관념을 깨고, 틀에 메이지 않는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시대의 길을 열어 나가야 한다. 지금은 그런 일꾼 그런 개척자들이 필요한 시대이다. 교회에서도 그러하고 나라에서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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