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중구 뿌리공원로 79에 위치한 ‘성씨(姓氏)별 뿌리공원’은 민과 관이 유기적인 협조체제로 조성된 전국 유일의 “효” 테마공원으로써 자신의 뿌리를 되찾을 수 있는 성시별 조형물과 사신도 및 12지지를 형성화한 부리 깊은 샘물, 각종행사를 할 수 있는 수변무대, 잔디광장과 공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팔각정자 뿐만 아니라 산림욕장, 자연관찰원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추어진 체험학습의 산 교육장이다.
고흥 류씨(번호 34)
작품명 : 아름다운 혼魂, 조각가 : 신동수
작품설명 : 이 작품은 고흥류씨(高興柳氏) 선조의 위업을 현대 이미지로 재구성하여 형상화한 작품이다. 전통 한옥이 지니는 아름다운 곡선의 지붕은 고흥류씨가 명문 거족임을 의미하고, 네 개의 기둥은 변함없는 선조님의 애국과 애족, 효행과 굳은 의지를 나타내고자 하였다.
횃불은 희생정신을 표현하였으며, 기단은 선조님의 혼이 대대손손 이어지기를 염원한 것이다.
유래 ▸ 고흥 류씨의 시조는 류영(柳英)이고 6世 류승무(柳升茂)는 증 문하시랑평장사이다. 7世 영밀공 류청신(柳淸臣)은 고려 고종(1257) 때 고흥(高興)에서 출생하여 충선왕 때 도첨의정승에 올라 고흥부원군에 책봉되었으며 고흥류씨의 득관조(得貫祖)이시다.
영밀공은 10세 때 왜구로부터 어머니를 구하여 효아정려(孝兒旌閭)를 내렸고 원(元)나라에 29차나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호두(胡桃)를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와 천안에서 재배하였다.
9世 충정공 류탁(柳濯)은 공민왕 때 도첨의정승으로 고흥부원군이시고 호안공 류준(柳濬)은 조선 태조 때 이부상서로 보국좌명공신이다.
10世 양정공 류습(柳濕)은 사조판서(四曹判書)를 지냈고 세종 때 좌군원수로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13世 참판공 류경(柳涇)은 고흥군(高興君)이고 판서공 류세웅(柳世雄)은 흥양군(興陽君)이며 이 두 분은 중종반정 공신이다.
14世 경암공 류구산(柳龜山)은 세종 때 왕자사부(王子師傅)이고 16世 의정공 어우 류몽인(柳夢寅)은 선조 때 도승지 대사간 이조참판 성균관대사성을 역임하고 조선 중기 설화문학의 대가이며 인조반정 후 불사이군의 지조를 지켜 순절하였다.
26世 문간공 성재 류중교(柳重敎)는 조선 말기 유학의 대종으로 위정척사를 주창하였고 27世 의암공 류인석(柳麟錫)은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자 호좌의병대장과 13도의군도총재로 국내외에서 항일투쟁 하시다가 이역 중국에서 순절하였다.
3·1독립운동 때 순국한 류관순(柳寬順) 열사는 자랑스러운 고흥류씨의 딸이다.
또 은진송씨(恩津宋氏)의 선조인 쌍청당 송유(宋愉)의 어머니는 고흥백 류준의 딸이니 일찍 홀로 되었으나 어린 아들을 잘 길러 정려(旌閭)가 내렸고, 인조 때 정승 남양 홍서봉(南陽 洪瑞鳳)의 어머니는 흥영군 류탱(柳樘)의 딸로 아들을 엄하게 길러 영의정에 오르게 한 어진 어머니이다.
위와 같이 우리 고흥 류씨는 충신 의사 효자 열녀 학행의 인물을 계속 많이 배출한 빛나는 우리나라 명문거족이다.
경주 손씨(번호 60)
작품명 : 영명(永鳴), 조각가 : 손영준
작품설명 : 현대적인 이미지의 석종은 자신의 뿌리를 되찾게 해 줄 것이며, 좌대는 우리 모두가 하나로 뭉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원형을 띠고 있다.
3개의 POST는 각각 충효(忠孝), 공경(恭敬), 번창(繁昌)을 상징함으로써 과거의 충효사상을 본받아, 현재에 웃어른을 공경하고, 미래로 번창하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역동적인 조형과 리듬감을 준108개의 면은 석종소리의 마디마디를 표현한 것이며, POST의 삼각형 구도는 우리에게 안정감을 부여하고 있다. 이에 자손만대 번창하는 문중의 기개는 영원히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하늘 높이 울려 퍼질 것이다.
유래 ▸ 삼한시대의 진한(辰韓)은 6부촌으로 형성된 국가였는데 이 부족국가가 연맹하여 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국호를 서라벌이라 칭하니 곧 신라의 건국인 것이다.
신라 제3대 유리왕9년(서기32년)에 6부 촌장들에게 성(姓)을 하사하니 그중 무산대수촌장(茂山大樹村長) 구례마(俱禮馬)는 손(孫)씨로 사성(賜姓)되었으므로 여기서 손씨가 시작된 것이다.
손씨의 세계(世系)는 경주(월성)·밀양·평해로 관향을 달리하면서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모두 구례마를 원조(元祖)로 하고 신라 대효(大孝)이신 순(順)을 중시조(中始祖)로 한다.
그 후 다시 세계(世系)가 전하지 않는 채 아(阿),장(藏),보(甫) 세분이 고려 때 대관(大官)으로 전해올 뿐 경주손씨 족보는 고려 말 1세 경원(敬源), 2세 현검(玄儉) 선조를 비롯하여 조선 초기에 3세 감찰공 등(監察公 登)을 위시하여, 계성군 사성(雞城君 士晟), 계천군 양민공 소(鷄川君 襄敏公 昭), 월성군 경절공 중돈(月城君 景節公 仲暾)은 3대 봉군(三代封君)이요 양대(兩代) 시호(諡號)의 집안으로 이어오는 명문이며 위 군호(君號)는 모두 경주란 뜻이다.
사성(士晟)은 세종 때 집현전 교리로서 한글창제에 참여한 학문과 외교에 명성이 높았고, 소(昭)는 문과에 급제하여 세조 때 이시애 난을 평정하는데 참여한 적개공신(敵愾功臣) 이조참판(吏曹參判)이며, 중돈(仲暾)은 문과에 올라 좌참찬(左參贊)에 이르렀으며 상주목사 재직 시 선정(善政)에 감흠(感欽)한 주민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세워 화상(畵像)을 모셔놓고 제사를 지냈고 선정비도 세워 공덕을 기렸다.
또한 청백리로서 우리나라 유학의 학통(學統)을 이어받은 현인(賢人)이다.
전통민속마을로 지정되어 있는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는 경주 손씨 대종가가 서기1457년도에 건립되어 현존하고 있다.
대종가는 오랜 세월 전통적인 가통(家統)을 이어가고 있으며 당호를 서백당(書百堂) 또는 송첨(松簷)이라 하며 국가 지정문화재로 되어있다.
한편, 우리나라성씨 286성. 4,179본관(2000년 통계청 자료) 본관(本貫)이 있으며,[관향(貫鄕)] 시조(始祖), 중시조(中始祖)의 출신지와 혈족의 세거지(世居地)로 동족(同族)의 여부를 가리는데 중요하며, 씨족의 고향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씨(姓氏)의 종류(種類)가 적어서 같은 혈족의 집안(가족)의 수가 많아지게 되어 성씨(姓氏)만으로는 동족(同族)을 구분하기가 곤란하므로 본관 (本貫)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자료 : 대전 뿌리공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