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고구려 유적지를 찾아 중국 만주 일대를 다녀왔습니다. 한 때는 우리의 선조들이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라는 나라 이름으로 호령하며 말 달리던 드넓은 영토였습니다. 또한 조선 말기까지도 간도(間島)라는 이름으로 조상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세종시자연보호협의회 회원들과 세종시민 25명이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4박5일의 일정으로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고구려 유적지를 찾아 떠나 중국 단동항에 도착한 날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우리 역사에 대왕(大王)이라는 호칭을 지닌 임금은 두 분 뿐입니다. 한 분은 고구려 제19대 왕으로 만주벌판의 드넓은 영토를 확장한 광개토대왕이고, 또 한 분은 조선시대 제4대 왕으로 한글창제와 문화발전을 이룩하여 몽매한 백성을 일깨워주신 세종대왕입니다.
 
역사적인 세종특별자치시 탄생을 기념하고 미래의 남북통일 행정수도를 기원하며 떠난 세종시민들은 이제는 이국땅이 된 곳을 찾아 조상들의 흔적을 보면서 잃어버린 역사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최고 번성기를 누렸던 옛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 국내성(현재 집안시)의 성터와 허물어진 광개토대왕릉(중국식 호칭 호태왕릉)과 건물 안에 갇힌 광개토대왕비를 보니 착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이름으로 중국의 영토 야욕이 갈수록 도가 넘은 지금, 고구려 400년 도읍지 집안은 한해가 다르게 현대화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동북공정이란 프로젝트를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하여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동북쪽의 변경 지역인 만주 지방의 역사, 지리, 민속, 가족 문제 따위를 연구하는 동북공정은 중국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심하게 왜곡하여 우리 역사의 뿌리를 송두리째 훼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고구려사까지 중국의 소수민족 역사로 자기나라 역사라고 왜곡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동북공정의 역사 왜곡에 대항하기 위해 여러 시민 단체와 학회가 힘쓰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언론의 보도와 국민적인 관심, 그리고 학교에서의 역사 교육 강화입니다. 역사는 민족의 얼인 만큼 정신줄 만은 놓지 말아야 합니다.
 
중국의 참담한 역사왜곡 현장에서 바라본 실상은 충격이었습니다. 천 년을 버티고 풍상을 견딘 광개토대왕비는 후손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각 지방에서 관광차 온 후손들은 몇 명이나 그 피눈물 나는 역사를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스쳐가는 관광지로만 인식하며 내리는 비를 피하기에만 급급했습니다.
 
광개토대왕릉에 허물어진 돌들을 바라보며 역사의 무상함을 느끼면서 만주 땅은 고조선과 고구려 등 우리 선조의 땅이었고, 불과 100년 전만해도 지금 연변 등의 땅인 간도가 한민족의 영토였는데 일제에 의해 1909년 간도협약을 맺어 청나라에게 빼앗긴 사실을 상기해봅니다. 일부 시민단체는 간도 찾기 운동을 펼치면서 “국민들의 깨어있는 역사 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현재 땅은 비록 중국이 차지하고 있지만 기세 상 역사와 정신만은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로 이른바 ‘정신적인 시효 지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지요. 비가 내리는 가운데 오른 광개토대왕릉의 허물어진 돌무더기 앞에서 빼앗긴 우리 역사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각오가 마음 한 구석에서 솟아오름은 이번 기행의 소중한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